샌디에이고 캠프 펜틀턴에서 열린 제72주년 인천상륙작전기념 행사
필자의 군인 환자들이 펜들턴(Pendleton) 약국에 많이 가서 펜들턴은 나도 모르게 익숙하지만, 민간인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어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1년 반전 김완중 전 LA 총영사가 보내준 <한국 밖의 한국, 나성에 가면>이라는 책을 읽고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초청인을 제한해서 우리 오렌지카운티·샌디에이고(OCSD) 평통에서는 위원 다섯 명만 출입을 허락을 받았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삼엄하게 경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펜들턴은 광활한 자연에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같이 사는 큰 도시 같았다.
9월 28일은 UN군이 인천 상륙 작전으로 6.25 전쟁 3달 만에 서울을 수복한 날이다. 이날 샌디에이고 퍼시픽 뷰 이벤트 센터(Pacific Views Event Center)에서 제72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약 250명의 현역 해병대 군인들과 한국전의 인천 상륙 작전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다들 90세가 넘은 백인 용사들이 참석했다. 많은 분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고 청각도 많이 안 좋아 보여 안타까웠다.
행사는 미국 머린 하우스 어소시에이션(Marine House Association USA) 부회장인 짐 내피어(Jim Napier) 예비역 대령의 사회와 귀빈 소개로 시작됐다. 컬러 가드의 군악대 연주와 함께 미국 성조기, 한국 태극기, 캠프 펜들턴 해병대기가 입장했다. 미국 국가와 한국 애국가가 흐르며 장중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이어 캠프 펜들턴 해병대 1사단장인 벤자민 왓슨(Benzamin Watson) 소장이 환영사를 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군사작전 상 최고로 힘들고도 성공적인 작전이었다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인천 앞바다의 조수 간만의 차이가 35피트나 되어 작전이 힘들었고 1차 상륙 작전에 성공한 해병대 부대는 그다음 밀물 때 2차 부대가 들어올 때까지 10시간 정도 적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는 설명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캠프 펜들턴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서부에 해병대의 훈련기지 설치를 옹호한 조셉 헨리 펜들턴(Joseph Henry Pendleton) 소장의 이름을 따 설치했다. 1942년 임시 설립되었고, 1944년 10월 루스벨트 대통령 때 ‘영구기지’가 되었고, 1946년에는 미 해병대 제1사단 본거지가 되었다. 한국 전쟁이 터지기 4년 전에 태평양 미 서부에 해병대 첫 사단이 생긴 것이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 서부에서는 필자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바스토우(Barstow)를 비롯해 인근 각지에서 젊은이들과 예비역 군인들을 동원해 크게 훈련시킬 시간도 없이 낙동강 전선으로 투입했다고 한다. 어떤 해병대는 한국 전쟁 발발 후 한 달도 안되어 샌디에이고 항을 떠나 인천 앞 을미도에 도착해 인천상륙작전에 곧바로 투입됐다고 왓슨 사령관은 소개하면서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 때 한국 정부를 대신해서는 김영완 총영사가 미 제1사단 해병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이 있게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필자 옆과 앞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국전 참전 해병대 용사들은 자신과 전우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는 듯했다.
인천 상륙 작전 성공 기념식은 올해가 29해째로, 한국 해병대 출신으로 올해 85세인 박용주 회장이 머린 하우스 어소시에이션 USA를 만들어 매년 기념해오고 있다.
우리는 참전용사들과 같이 악수도 하고 감사의 뜻도 전하며 건강하게 잘 사시라고 인사말을 했다. 마침 한 테이블에는 필자가 초청한 미군 환자 가족이 와서 더욱 반가웠다.
기념식을 마친 후 해병대 출신인 설증혁 평통 상임 고문과 캠프 펜들턴에서 일하는 구성모 평통 샌디에이고지회 총무의 안내로 펜들턴 안을 둘러보았는데 미국이 왜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광활한 지역에 세계 각 지역의 전투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훈련하는 장소만 30곳이 된다고 한다. 거기에 군인들이 쓰는 최고의 현대식의 무기와 미 해병대만이 가지고 있는 군인 정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션과 가치 정신이 미국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필자는 이 기념식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앞으로도 민주평통 OCSD협의회가 계속 참여해 더 뜻깊은 보은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90세 중반에 들어선 이 해병대 용사들이 십 년 후에는 얼마나 있을지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돌보았던 많은 한국전 용사들, 장성들이 돌아가셔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오는 길에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에 들려 한국의 한 대학교와 MOU를 맺는 것을 도왔다. UCSD와 여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협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평화를 지키고 싶다.